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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신학과 최근 동향

 

First Stage

 

바울의 유대교를 향한 태도는 무엇인가?

  1. 루터는 바울이 율법에 대항했다고 생각했다.
  2. 칼빈은 바울이 율법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다고 생각했다.
  3. 쉬바이처는 그 질문이 잘못 진술되었다고 생각했다. – 1930년대 슈바이처는 바울의 사상을 묵시적인 유대교 내에 위치시키려함. 그리스도의 신비주의에 초점을 맞춤. (Paul and his interpreters: a critical history)

 

1948년 W. D. Davies – 데이비스는 ‘바울은 메시아가 왔다는 것을 믿었던 한 랍비’로 해석했다. (Paul and Rabbinic Judaism: Some Rabbinic Elements in Pauline Theology) – 데이비스는 바울은 자신의 새로운 믿음을 유대교의 성취로 간주했다고 생각.  – 데이비스 이후 바울의 유대 배경에 대한 관심은 그 분야에 지배적이 되고, 헬라적인 영향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밀려나게 됨. 사해사본의 발견이 이러한 경향을 또한 강화시킴!!!

 

H. J. Schoeps – 데이비스와 같이, 바울의 수많은 개별적 개념들과 관념들을 랍비적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 바울과 유대교 신앙의 본질에 관해서 차이점을 발견함.

 

Second Stage

 

1977년 샌더스가 Paul and Palestine Judaism을 출판함으로 바울 연구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 불릴 수 있을 만한 연구를 시작!!  그는 랍비적 종교유형과 바울 종교유형을 비교함. 그는 랍비종교유형을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라고 명명. 유대인은 자기 주장이 아닌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율법을 따르기로 희망한 것이라고 주장! 반면 바울은 참여 종말론을 제시함. 그리스도와의 신비적-성례전적 연합이 바울종교의 실제적인 중심이라고 봄. 그렇다면 바울이 유대교를 포기한 이유는? 더 좋은거 발견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주적인 구원을 제공했고, 모든 사람들이 이 구원의 요청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하나님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구원을 만드셨기 때문에 유대교를 포기했다고 샌더스는 생각함. 곧 바울은 할례와 안식일 준수와 같은 토라의 계명들이 종말론적인 공동체 속에 속해있는 이방인들에게는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

 

제임스 던, 이 사람은 뭔가 새로운 것을 주장한 사람이 아님! 유대교에 대한 지적들 이미 1930년대에 있었음! 이신칭의가 바울 신학의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음(schweitzer 1930; Lipsius 1853; Sabatier; Luedemann, Weizsaecker, Wrede), 종교개혁적 시각에서 바울신학에 대한 오해의 지적도 이미 있었음(Krister; Stendahl 1963; Manson), 바울의 경험은 회심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소명을 받은 것, 그리고 바울의 관심은 우주적인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유대인-이방인 문제라는 사실도 슈텐달에 의해서 이미 지적된 것!!

 

뭔말이냐면, 새관점의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근데 왜 이렇게 샌더스부터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인가? 유대교 학자들과 개신교 학자들 사이의 민감한 반응을 얻어냄! (해그너의 지적)

 

이러한 가운데 갈라디아서의 수사학적 연구는 1979년 베츠(H. D. Betz)의 연구로 주요 흐름 중 하나가 됨!  이후 가우(Rudolf Gouw, 1991)와 엘리어트(Susan Margaret Elliot, 1992)가 하갈과 사라를 비교하는 수사학적 연구 수행! // Gouw는 하갈이 유대인이고, 사라의 자유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기존의 해석을 깨고, 이방인 그리스도인 즉, 할례와 율법준수만 안했으면 사라의 자손의 될건데… 잘못했다는 책망이라고 가우는 봄!! 곧 바울은 율법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에 관한 자신의 메시지가 방종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범주에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완전한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알레고리의 방법으로 전했다는 것이다. // Elliot는 여기에 더해 재미있는 해석을 한다. 그도 수사학적 분석을 사용한다. 그는 아타톨리아 산의 어머니 제의와 관계되었음을 주장한다. 이것을 바울의 낙담전략이라고 부른다. 즉 갈라디아인들의 할례에 대한 동경을 꺽어 낙담시키려는 것이다. 자기 거세를 통해 신들의 어머니에게 노예가 되는 것처럼, 할례를 통해 율법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세례와 아들됨, 자유의 관계로 대치하고자 바울은 의도했다는 것이다!!// Assisi Saldanha 1994는 당시 수사학적 호소의 특징을 언급하면서 바울이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갖는 자유를 위한 자유를 지적하였다. // Edward J. Sanders 2000는 베츠(1979년)에게서 영향받음. 베츠는 갈라디아서를 법정에서 사용하는 수사학적 구조를 가진 것으로 분석. 샌더스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감.

 

 

Third Stage

 

1980년대 이후 제기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왜 하나님이 생명을 위해 주신 율법이 폐기되는가? 왜 바울의 복음은 그토록 선민들에 의해 거절되었는가?

레이제넨은 바울의 신학이 바울 자신의 경험에 의해 생성된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 경험은 사회적 갈등의 경험이었다. // 베커는 (J. Becker, 1989)는 한 서신에서 다른 서신으로의 바울의 사상의 이동을 추적. 이전의 헬라적 기독교를 베커는 안디옥 기독교로 간결히 대체시켰다. 바울이 안디옥에서 직면한 유대인들과의 갈등을 통해서 율법의식을 거절하기 시작했다는 것. 즉, 바울의 신학은 바울의 복음 전파시에 직면한 경험과 그의 영의 경험을 통해 세워졌다고 봄, // 1990년대에 들어서 세갈(A. Segal)은 유대인 학자로서, 바울이 경험했던 회심의 경험과 신비적인 특성을 강조하여 설명한다.

휘브너는 (H. Huebner, 1978)는 바울의 사상이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바울의 사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되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는 바울의 율법에 대한 관점이 갈라디아서에서 로마서 사이에서 현저한 변화를 겪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도 헛점. 왜냐? 로마서 9장에서 이미 갈라디아서와 비슷한 율법에 대한 바울의 입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레이제넨은 간단히, 바울이 사소한 해결을 허용하지 않는 주제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비일관적이라고 말한다.

 

 

Fifth Stage

 

R. L. Foster;1999와 Robert Jewett;1999는 갈라디아서에서 나타난 바울의 언어를 명예와 수치의 관점으로 조사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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